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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철학하기

명량, 이순신 장군 이야기의 시작!

by Doodle Brother 2026.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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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2014, 김한민 감독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역사를 바꾼 가장 위대한 전쟁 <명량>. 개봉 첫 날 어렵게 티켓을 예매해서 봤다. 두들형님은 영화를 가려보는(?) 스타일이다. 또한 개봉 즉시 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충분히 내놓은 상황에서 극장을 찾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 만큼은 다른 누구보다 최대한 빨리 꼭 봐야한다고 마음 먹었고 그렇게 극장에서 만났던 기억이 있다. 

 

대한민국 천만 영화 1등을 지키고 있는 작품! 우선 이순신을 연기한 최민식의 압도적인 연기가 많은 이들에게도 남아 있으리라 본다. 그리고 이순신을 잡기 위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직접 출정시킨 일본 해적집단의 우두머리 구루지마 미치후사를 연기한 류승룡의 카리스마도 그럴 것이다. 실제 구루지마가 명량에서 죽었던 나이가 26세였다. 이순신과 구루지마의 한 판 승부!

 

두 주인공 말고 또 남는 것이 있다면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눠진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의 전개일 것이다. 영화의 전반전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의 기운으로 채워져 있다. 곧 들이닥칠 것 같은 폭풍전야라고 말하고 싶고 나머지 후반부는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사실 전반부는 좀 답답했다고 할까? 이순신의 심경과 그의 깊은 고뇌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기대하던 거북선은 불타는 모습만 보여줬고.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당시 첨저형의 작고 빠른 일본 수군의 전함과 견고하고 덩치가 큰 평저형의 조선 수군의 판옥선을 왜곡되지 않게 사실적으로 잘 그려냈다는 것! 영화 속 조선의 판옥선 상부와 내부, 일본 전함 세키부네와 고바야부네도 사실적으로 표현해 냈다. 외부로 보이는 부분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지고 있는 견고함이라든지 민첩함등을 잘 표현했다. 왜 일본 전함에서는 포를 쏘지 못하는지,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여러대의 포를 발포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을 영화에서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고증을 토대로 만든 영화였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1597년, 선조 30년 펼쳐진 명량해전! 12척으로 전쟁을 준비하던 이순신을 찾아나선 일본 해적 구루지마 집단의 출정이 영화의 시작이다. 조정의 오판으로 인한 이순신의 옥살이... 칠전량에서의 조선 수군의 완패. 서서히 서남해로 다가오는 일본 수군들과 전남을 먹어들어가시 시작한 일본육군으로 조선에는 어두움만이 드리워지는 상황. 한성과 평양으로의 보급품과 병력을 이동해야 하는 일본으로서는 바닷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이순신이 남해안을 틀어 막고 있으니 평양까지 올라갔던 일본 육군이 다시 부산 쪽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게 된 것 아닌가. 남해안 해안 쪽에 왜성들이 많은 이유가 그만큼 해상 보급로가 오래도록 막혔다는 뜻 아니겠는가. 이 바닷길을 막고 있는 이순신이 장흥 회진 앞바다에서 재정비를 하고 결국 해남 우수영 앞 바다에서 피할 수 없는 전쟁을 치르게 된다. 이게 바로 <명량>. 남아있는 12척의 배를 거느리고 말이다.

 

위의 포스터는 우리나라가 아닌 곳에서 사용될 포스터 이미지이다. 멀리 보이는 구루지마 가문의 문양이 지금도 두들형님을 소름 돋게 한다. 조일전쟁 가운데 가장 악랄했으며 무서운 존재였던 일본해적 구루지마 가문. 구루지마가 26세 라는 젊은 혈기와 카리스마로 나섰지만 결국 이순신이 이겼다.

 

​또 전쟁이라는 것이 정말 멋지게 칼을 사용하고 민첩하게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다. 날씨와 환경이라는 요인 때문에 질수도 있고 또 그런 것들을 이용해서 100%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도 하는 것이 전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순신은 이길수 있는 단 하나의 조건만 보여도 그것을 끝까지 파고들었으며 자기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이용하였다. 잘해서라기 보다는 이순신은 그것밖에 선택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2척의 배만 있다는 말이 그런 의미가 아닐까...

 

당시 상황을 알면 더 마음이 아플수밖에 없는 그런 영화다. 영화속 조선 수군은 12척! 일본 수군의 전함을 130척으로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기록한다. 즉 12척의 판옥선으로 130척의 일본 수군을 이겼다고 기록했는데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이 한 줄로 명량대첩은 세계 4대 해전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사실 명량해전에 참전한 일본 수군은 330척이었다는 사실이 일본 타카야마공 실록을 통해 밝혀진다. 

 

왜 330척을 130척으로 기록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겨우 모은 적은 병력들로 해상 보급로를 막고자 했던 이순신에게 전해진 조정의 명령은 육군으로 합류하라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이순신은 말을 안듣는 장군이지만 그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정확하게 알았기에 그랬던 것이다. 이 전쟁을 막는 유일한 길은 바다를 막는 것임을 알았기에 그것에 온 힘을 쏟았던 것이다. 이순신이 병력을 이끌고 육군에 합류했다면, 일본 수군이 군산으로, 한양으로, 평양으로 보급물자를 전달하게 되었다면 전쟁은 어떻게 전개 되었을까?

 

이순신이 330척을 130척으로 축소해서 기록한 것은 명량해전을 선조와 조정의 대신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승리했다는 것만을 기록하고 싶었으리라. 이미 민심은 선조를 떠난 상황에서 이순신이라는 영웅이 등장, 그것은 선조와 조정의 대신들에게 또 이순신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기에 이것까지 생각한게 아닐까 두들형님의 생각을 적어본다. 오래도록 130척으로 알고 있다가 명량해전에 참전한 일본수군의 배가 330척이었다는 사실을 일본 자료를 통해 알게 된 것이 사실 씁쓸하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정말 잘 봤고 또 기대 이상의 영화였다. 그리고 김한민 감독은 3명의 명배우와 함께 이순신 장군의 거대한 서사를 써내려갔다. 명량, 한산, 노량. 그 첫번째 작품, 한국 최고의 관객수를 기록한 <명량> 이었다.

 

 


 

두들형님의 영화이야기 - 명량 01

https://youtu.be/9AaUd4MPJXg?si=RMktAQOXAiy_h_ZW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영화의 시작!


오늘도 나는

영화 한 편 속에서
삶의 정수를 건져 올린다.
두들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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